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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미술인들의 사랑방 ‘정수화랑’ - “미술계에 활동하면서 뜻이 맞는 미술가들과 함께하는 것이 나의 행복”
  • 기사등록 2017-09-03 16: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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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립현대 미술관 뒤에 규모는 작지만 우리나라 미술계 한편을 지켜내는 화랑이 있다. 골목 깊숙이 숨어있어 찾기 힘들지만 젊은 미술인들의 해방구로 알려진 정수화랑이 그곳이다.


▲ 사진 왼쪽부터 정일모 전시작가, 박정수 대표, 조수경 디렉터



2011년 개관한 정수화랑은 젊은 미술인들의 대안공간으로써 미술인에 대한 발굴과 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매년 15-18명 정도의 미술인을 발굴 지원 육성하면서 나이와는 상관없는 첫 전시에 대한 도움을 지향하는 공간이다.
 
박정수 대표는 1992년 화랑계에 첫발을 디뎠다. 대안공간과 상업공간의 양면성을 유지하기 힘들지만 탄력적 운영방식으로 2016년 가을에는 미술문화를 지원하는 기업 두 곳과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업무협약을 맺은 곳은 (주)영일 프레시전과 (주)신진스틸 등이며 젊은 미술인 지원과 후원을 약속하고 현재까지 진행해 오고 있다.


1992년 연일아트라는 이름의 화랑을 시작으로 25년이 지난 현재 정수화랑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수화랑 대표 박정수는 ‘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 ‘미술 읽어주는 남자’를 비롯한 다양한 저술활동과 아트마케팅을 선도하며 활동하는 미술평론가 이면서 갤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 삼청동에 위치하면서 예술가 지원사업에 목적을 두고 국내외 아트페어 및 다양한 전시활동 지원과 후원을 통해 많은 작가들을 배출하고 있다.



다음은 박정수 대표와의 일문 일답.


-작가를 지원·후원 한다고 하는데 작가 발굴은 어떻게하고 있는지.
거창하게 작가발굴이라는 말은 아닌 것 같아요. 미술계에 활동하면서 뜻이 맞는 미술가들과 함께하는 것뿐이죠. 조금 알려진 바와 같이 저는 미술가의 포트폴리오를 보지 않아요. 포트폴리오는 과거의 최선이거든요. 그냥 미술가와 술 한잔 하다가 스스로 미래에 대한 확신과 예술에 대한 열망이 느껴지면 제가 먼저 부탁하죠. 전시한번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라고 말합니다.


-화랑을 운영하신지 25년이 되었습니다. 화랑을 하게 된 계기는.
그냥 우연인 것 같아요. 대학 4학년 때 건축업 하시는 분을 만났어요. 설악산에 콘도 시설이 많이 들어서는 시기였죠. 그림 포스터를 액자로 만들어 납품해 볼 생각 없냐는 말에 그냥 했어요. 세금계산서 때문에 사업자등록을 했습니다. 그때는 화랑이라고 할 것도 없었어요. 조그마한 공간에 판화 몇 점 걸어두고 포스터 액자 몇 개가 전부였지요. 미술시장에 경험이 없어 힘들었습니다.


-관장님의 화랑 운영방식과 철학이 있다면.
그냥 운영해요. 미술가를 초대해서 2주간 전시하고 판매되면 30% 수수료 가진답니다. 판매가 없으면 그냥 전기세를 부담하죠. 저의 책상 위에 인물 드로잉이 참 많습니다. 젊은 미술가에게 받은 것들인데, 전시가 끝나고 작품 판매가 없을 때 자신의 작품을 주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작품은 미술가의 재산이기 때문에 받지 않고 있습니다. 전시 작가들에게 농담 삼아 ‘연필로 얼굴이나 그려줘!’ 했더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지금 한 40장쯤 되며, 명함크기에서 커봐야 A4사이즈 정도 됩니다.  


-기업 큐레이터 활동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1992년 가을 친구가 신문을 보여 주더라구요. 롯데미술관(현재의 화랑)에서 큐레이터를 뽑는다고 말입니다. 그룹 공채 시험으로 큐레이터가 되어 롯데백화점 미술관으로 발령을 받았지요. 그런데 막상 백화점에 가니까 신사복 코너에서 견습하라고 하더라구요. 참 당황했었습니다. 그 당시는 큐레이터라는 말도 잘 사용하지 않을 때였어요. 어찌하여 롯데화랑에서 7년 정도 근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렸어요. 공채라는 타이틀과 큐레이터라는 직함으로 참 건방지기도 했지요.    


-요즘 화랑운영이 힘들다고 하는데, 미술시장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화랑에서는 자기만의 정보가 있었어요.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가격이 얼마에 팔렸는지 고객이 서로 몰랐어요. 가격정보를 독점하고 있으니 미술 애호가에게 작품 매매하기가 나름 용이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인터넷이 다 가졌어요. 작품 가격에 대한 정보 독점이 사라졌죠, 경매회사 사이트에 들어가면 누구의 어떤 유형의 작품이 얼마에 판매되었는지 다 알 수 있지요. 작품 판매 정말 힘들어요.


지금은 아트페어가 대안인 것 같아요. 이러한 현상은 한 참 더 가겠지요. 그러다가 소규모 화랑들의 조합이 활성화 될 것 같아요. 각기 독특한 영역을 지닌 화랑들이 모여 중 대형 미술시장을 형성하겠지요. 아트페어의 대안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수화랑에는 어떤 작가들이 후원 받고 있나요.
남들 다 아는 비밀입니다. 작게는 10여명 많게는 70여명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전속은 없어요. 가난한 화랑에서 무슨 전속입니까. 그냥 갤러리스트와 미술가 사이의 정 같은 것이죠. 배신요? 배신이 어디 있습니까. 정수화랑보다 나은 화랑에서 전시하자고 하면 그냥 해야죠. 배신이 아니라 발전이지요. 더 나은 영역을 위한 발판이고 싶습니다. 지금 미술가 중에서 몇 명만이라도 뜨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이제는 화랑사업이라기 보다 그냥 사명감 같아요.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제가 한다고나 할까요? 누군가는 처음 시작하는 미술가를 알아봐 주어야 하고, 누군가는 이들을 자리 잡게 해 주어야 하거든요. 그렇다고 거창하게 지원이나 육성이란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우선은 올 가을에 나올  ‘고흐 공자를 보다’란 책에 집중해야 하겠지요. 쓰기 시작한지 벌써 4년이 넘었어요. 좋은 책을 발행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몇 개의 아트페어를 진행하면서 2018년을 준비해야겠지요. 단기적으로는 지금 있는 지하 화랑에서 지상으로 올라가야지요. 좀 더 넓은 공간에서 큰 작품을 만나고 싶습니다.
 
한편 정수화랑의 박정수 대표는 세종대학교 회화과,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예술학을 전공한 후 롯데화랑 수석큐레이터. (주)종로아트 관장. 갤러리가이드 편집부장, 아트앤피플 편집인, 베네주엘라 국제 아트페어 커미셔너, 대한민국공예품대전 미술감독 등 다양한 활동을 역임했다.


다년간의 미술시장 경험으로 ‘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 ‘미술. 투자. 감상’, ‘그림파는 남자의 발칙한 마케팅’, ‘아트앤 더 마켓’, ‘미술읽어주는 남자_독화 또는 감상’의 단행본과 많은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현재, 한남대학교 서양화과 겸임교수, 현대미술경영연구소, 정수화랑 대표, (사)한국미술협회 전시기획 정책위원장, (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미술평론위원, 미술전문지 아트피플 편집장. 서울문화투데이 ‘박정수의 미술이야기’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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