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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철의 서예담론 · 2 > 서예의 미래, 누가 주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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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6-09-03 12:01:44
  • 수정 2026-09-03 13: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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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섹션 1: 서예의 본질과 실천 의지
  • 행위성의 확장: 서예 본질의 존재론적 퍼포먼스를 이끌다
  • 한천 양상철 (융합서예술가)

붓을 드는 순간, 정지된 시간 위로 먹의 강이 흐른다. 서예는 언어의 외형을 넘어, 사유와 정서가 붓을 통해 구체화되는 예술이다. 우리는 정지된 먹선에서 완결된 조형미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꿈틀거리는 생명력은 붓을 쥔 손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작가의 에너지, 즉 ‘행위’의 생생한 증거다. 서예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완성된 작품 너머, 붓과 몸이 혼연일체가 되는 찰나의 움직임, 그 ‘행위성의 미학’에 깊이 침잠해야 한다. 획 하나하나에 깃든 숨결, 먹의 농담이 그려내는 시간의 지층, 침묵으로 웅변하는 여백의 울림은 모두 작가의 물리적, 정신적 행위가 남긴 고귀한 흔적이다. 서예는 완성된 조형을 넘어, 내면이 외부 세계와 교감하는 찰나를 응축한 예술이다. 이 글에서는 서예의 본질을 ‘행위성’이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보고, 동서양 예술과의 비교를 통해 서예의 독자적 가치를 조명하며, 동시대 미술 속에서 서예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1. 찰나의 미학: 붓, 몸, 그리고 혼의 조화

서예는 붓을 잡는 순간부터 마지막 획이 멎는 순간까지, 붓과 몸, 그리고 혼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찰나에 피어나는 독특한 미학을 펼쳐낸다.


첫째, 한 호흡의 기록,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의 예술이다.

서예만큼 그 과정이 일회적인 예술은 드물다. 붓이 종이에 닿아 마지막 획을 완성하기까지, 모든 과정은 단 한 번의 시도로 귀결된다. 오랜 수련으로 다져진 기량과 서법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되지만, 일단 붓을 들면 작가는 예측 불가능한 직관과 영감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긴다. 붓의 속도, 압력, 방향은 작가의 무의식적 반응과 그 순간의 감정, 심지어 호흡의 미세한 떨림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이 ‘통제 속의 자유’는 오직 그 찰나에만 가능한 고유한 형태와 살아있는 에너지를 빚어낸다. 서예는 수정이나 반복이 허락되지 않는, 유일무이한 숨결의 기록이며 그 행위 자체에 강력한 미학적 존엄성이 깃들어 있다.


둘째, 생명의 춤, 온몸으로 써 내려가는 글씨다.

더 나아가, 서예는 손목의 기교를 넘어선다. 팔과 어깨, 나아가 온몸의 리듬과 중심 이동이 붓끝에 연결되어 글씨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총체적 행위다. 작가의 호흡은 필획에 율동감을 부여하고, 몸의 무게 중심 이동은 획의 강약과 질감을 결정한다. 붓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작가의 신체가 확장된 예민한 감각 기관이며 내면의 기운을 외부로 실어 나르는 통로다. 우리는 서예 작품에서 작가가 움직였던 역동적인 궤적을 느낄 수 있다. 획의 꺾임과 이어짐, 먹이 번지고 갈라지는 ‘갈필(渴筆)’의 효과까지, 모든 것이 작가의 움직임과 숨결이 남긴 증거다. 이를 통해 작품은 단순한 형태를 넘어 살아있는 생명체로 다시 태어난다.


셋째, 통제와 해방, 엄격함 속의 조화다.

서예는 언뜻 엄격한 서법의 규칙과 숙련된 통제 아래 이루어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먹의 번짐이나 붓털의 미세한 갈라짐, 그리고 작가의 순간적인 감각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해방의 예술이기도 하다. 이는 혹독한 훈련으로 다져진 통제력이 절정의 순간에 우연과 즉흥의 미학으로 승화되는 과정이다. 작가는 물리적 행위를 통해 내면과 교감하고, 그 역동성에서 미학을 체험한다. 정교한 기술이 순간의 직관과 만날 때, 서예가는 붓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동시에 붓과 함께 새로운 조형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 통제와 해방의 역동적인 균형 속에서 서예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선 진정한 예술로 거듭난다.


양상철, 바람(風), 캔버스 위 혼합재료, 116.8×91.0cm, 2024


2. 서구와 서예: 미학적 지향점의 차이

20세기 중반 이후 서구 미술사에서도 ‘행위성’을 전면에 내세운 예술 사조들이 강력하게 등장했다. 하지만 서예의 행위성은 서구 미술의 그것과 지향점과 철학적 배경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독자적인 미학적 깊이를 지닌다.


첫째, 목적과 배경: 동서양의 다른 길

서양 미술의 행위성을 대표하는 액션 페인팅은 재현 중심의 전통에 대한 반발이자, 예술가의 내면적 에너지 분출을 중시하는 새로운 미학의 선언이었다. 잭슨 폴록은 거대한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거나 흘리는 ‘드리핑’ 기법을 통해 무의식적 충동과 즉흥적 행위 자체를 기록했다. 그에게 그림은 ‘무엇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였으며, 과정이 곧 예술의 핵심이었다.

이에 반해 서예의 행위성은 동양철학의 정신적 토양 위에서 자라났다. 서예는 ‘법(法)’이라는 규율 속에서 발전하며, 글자라는 의미 체계와 ‘필묵 정신’이라는 내면적 수양이 조형미와 결합한다. 유교의 ‘수신(修身)’ 개념은 절제된 몸짓을, 도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의도를 넘어선 자연스러운 운필을, 선불교의 ‘돈오(頓悟)’는 순간의 깨달음을 통한 일필휘지를 추구하게 했다. 폴록의 행위가 기존 질서를 파괴하며 자유를 향해 포효했다면, 서예의 행위는 정제된 몸짓과 정신적 집중을 통해 내면의 질서와 조화를 추구한다.


둘째, 결과물과의 관계: 과정과 완성을 아우르는 서예

서양의 퍼포먼스 아트는 행위 자체가 예술의 핵심이며, 결과물은 기록으로 남거나 소멸하는 경우가 많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처럼, 물리적 결과물 없이 과정의 경험 자체가 예술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서예의 행위성은 그 자체로 깊은 의미를 지니면서도, 그 행위가 낳은 ‘서예 작품’이라는 영속적인 결과물로 귀결된다. 서예 작품은 단순한 행위의 흔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된 미학적 가치를 지닌다. 서양의 퍼포먼스가 행위의 현장성을 중시한다면, 서예는 행위의 에너지가 결과물 속에 영원한 생명력으로 응축되는 독특한 예술이다. 찰나의 행위가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가치로 승화되는 것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퍼포먼스의 한 장면. 2010년 뉴욕근대미술관(MoMA)에서 열렸던 회고전 <예술가가 여기에 있다(The Artist Is Present)>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침묵 속에서 관객과 마주 앉아 눈빛으로만 소통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3. 시대를 새긴 필묵의 혼: 한국 서예의 명필

한국서예사에는 독보적인 행위성을 선보인 명필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서법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붓의 움직임에 자신의 혼을 담아 글씨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조선 중기의 한호(한석봉)는 강건하고 웅장한 필획으로 당대의 기개를 표현했다. 그의 글씨는 마치 단단한 바위를 정으로 쪼아내듯, 응축된 힘과 에너지가 붓끝에 집중되어 있다. 느리지만 강력한 그의 필획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장엄한 스케일을 느끼게 한다.

조선 초 왕족이자 명필인 안평대군은 천부적 감각과 호방한 기질로 세련되고 맑은 서체를 선보였다. 그는 획의 강약, 속도, 공간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며 예술혼을 펼쳤고, 당대 문인들과 문예 중심의 소통 공동체를 형성하며 개인의 예술을 넘어선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근현대 서예의 거장 김돈희는 전통 서법을 깊이 계승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자신만의 서체를 창조했다. 그는 중국 황정견의 서체를 독자적으로 재해석하여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필체를 확립했다. 파격적인 획의 구성과 먹의 농담 변화를 통해 새로운 공간감을 창출한 그의 붓놀림은 내면의 갈등과 해방감을 역동적으로 시사한다.


안평대군, <재송엄상좌귀남서(再送嚴上座歸南序)> 부분, 견본묵서, 1450년, 개인소장한호, <석봉청묘초려시서(石峯淸玅草廬詩序)>, 1598년

4. 시간 속에 피어나는 생명: 서예의 행위와 흔적

서예에서 시간성은 행위성과 분리할 수 없는 본질적 요소다. 작품의 모든 선과 공간은 작가가 시간의 흐름 속에 남긴 흔적이다. 그것은 붓이 지나간 물리적 시간을 넘어, 작가의 감정과 사유가 응축된 ‘내면의 시간’이다.

붓이 종이 위를 지나는 찰나, 그 짧은 시간은 선의 길이와 폭, 먹의 농담으로 기록된다. 붓을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선은 강한 생동감을 띠거나 더없이 부드러워진다. 먹이 종이에 스며들고 번지는 시간의 차이는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섭리와 작가의 통제력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시간의 예술이다.

이처럼 서예는 작가의 행위가 만들어내는 시간의 축적을 가장 본능적으로 구현한다. 완성된 작품은 비록 정지된 형태로 존재하지만, 그 안의 선과 공간은 작가가 붓을 움직였던 과거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 그 시간의 흔적을 더듬으며, 작가의 행위를 시간적으로 재구성하고 심리적으로 공명하는 역동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양상철, 문자유희(부분), 스테인레스 철판 문자 뚫기 후 아크릴, 77.0×97.0cm


5. 동시대 행위성: 융합적 사고를 통한 확장

전통 서예가 남긴 행위성의 유산은 박물관의 화석이 아니라 동시대의 기술과 사유를 만나 재탄생할 잠재력을 지닌다. 필자는 ‘융합서예술’이라는 화두 아래, 서예의 행위성을 동시대 미술의 언어와 결합하는 실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첫째, 과정을 작품으로 제시하는 ‘퍼포먼스로서의 서예’이다. 

전통 서예에서 행위의 과정은 결과물 뒤에 숨겨졌다면, 나의 작업에서는 그 과정을 전면에 드러내 관객의 직접적인 체험 대상으로 삼는다. 사방으로 흩뿌려진 먹의 파편은 작가의 심호흡이 남긴 흑백의 메아리다. 관객은 작품에 남은 흔적을 통해 붓이 지나간 속도, 작가의 몸짓, 순간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이는 서예 행위의 시간성을 극대화하여 퍼포먼스 아트로 승화시키는 실험이다.


둘째, 기술과 결합하여 감각을 확장하는 ‘미디어로서의 서예’이다.

디지털 기술은 서예의 행위성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하는 도구다. 전통 붓으로 쓴 글씨를 디지털 환경에서 해체하고 재조합하면 필획은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미지의 일부가 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행위는 물리적 행위를 넘어, 디지털 레이어를 쌓고 픽셀을 변형하는 논리적 행위로 확장된다. 이는 서예의 핵심 미학인 ‘기운생동(氣韻生動)’을 현대 기술로 재해석하는 시도이다.


셋째, 평면을 탈출하여 공간을 조각하는 ‘설치미술로서의 서예’이다.

서예의 행위는 붓과 종이를 넘어 새로운 물질과 만난다. 차가운 철판에 글씨를 쓴 뒤, 용접기라는 ‘불의 붓’으로 획을 따라 잘라내는 작업은 부드러운 붓질을 단단하고 영구적인 물질로 치환하는 행위다. 잘려 나간 글씨는 깊이와 그림자를 가진 3차원의 공간이 되고, 부식된 철의 거친 질감은 시간의 흔적을 담는다. 서예 필획의 에너지가 공간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결론: 시대를 관통하는 행위의 미학 -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묻다

붓이 그은 필획 속에서 우리는 조형미를 넘어 작가의 행위가 빚어낸 생명력과 마주한다. 서예는 동양 철학에 깊이 뿌리내린 내면의 표현으로, 외부로의 분출을 지향하는 서구의 행위성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서양의 행위 예술이 즉흥성과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서예는 엄격한 규율 안에서 통제된 자유를 구현하며 그 에너지를 영속적인 작품 속에 응축시키는 독창적 예술로 자리한다.

한국 서예의 역사는 시대와 개인의 정신을 필묵으로 담아낸 명필들의 행위로 가득하다. 오늘날, 그 행위성은 동시대의 기술과 사유를 만나 끊임없이 재탄생하고 있다. 퍼포먼스로서의 서예는 붓의 흔적을 통해 관객이 작가의 움직임을 느끼게 하고, 미디어로서의 서예는 새로운 도구로 감각적 지평을 넓힌다. 설치미술로서의 서예는 평면을 넘어 공간 속에서 서예의 에너지를 물질적으로 구현한다.

이러한 융합적 시도는 전통의 부정이 아니라, 서예의 핵심 가치인 ‘행위성’을 동시대의 언어로 탐구하고 확장하려는 필연적 과정이다. 서예의 미래는 전통의 반복이 아니라, 필묵의 정신을 품고 붓 너머의 세계와 소통하는 ‘융합적 사유자’에 의해 열릴 것이다. 그 실험적이고 역동적인 과정 자체가 바로 살아 숨 쉬는 서예의 내일이다.


양상철, Illusion 2025-20, Digital Painting, 2025 

<용어 해설>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1912~1956) : 20세기 미국 추상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물감을 붓거나 흘리는 ‘드리핑’기법을 통해, 신체 전체의 움직임과 무의식적 에너지를 직접 기록하는 혁신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업은 회화가 재현의 도구를 넘어 행위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Marina Abramović, 1946~ ) : 세르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행위 예술가. 1970년대부터 자신의 신체를 매체로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와 예술의 본질을 탐구해 왔다. 그녀의 작업은 고통, 인내,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데 중점을 둔다.


한호 (韓濩, 1543~1605) : 한석봉으로 더 잘 알려진 조선 중기의 서예가. 강건하고 웅장한 필획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그의 글씨는 바위를 깎아내듯 응축된 힘과 에너지를 담고 있다.


안평대군 (安平大君, 1418~1453) : 조선 초기의 왕족이자 명필. 천부적인 감각과 호방한 기질로 세련되고 맑은 서체를 선보였다. 당대 문인들을 모아 서예 유파를 형성하는 등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김돈희 (金敦熙, 1871~1937) : 전통과 현대를 잇는 근대 서예의 거장. 전통 서법을 계승하면서도 중국 황정견의 서체를 독자적으로 재해석하여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필체를 확립했다. 그의 파격적인 조형 실험은 이후 현대 서예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교두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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