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을 지필묵과 함께하며 서화예술의 심오한 경지를 견지해온 은노인(隱老人)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 선생이 서예와 문인화, 그리고 문자 추상을 아우르는 <회귀사유전(回歸思惟展)>을 5월 6일부터 5월 12일까지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예술적 사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208점의 작품을 엄선하였다. 서예, 문인화는 물론, 묵적과 판화, 캔버스, 문자추상, 형상추상 등을 종횡무진하며 선생이 평생 도달하고자 했던 ‘예술적 철학’을 총망라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심우식, 申維漢 詩, 68×70cm, 화선지
예술의 본질을 묻다: ‘회귀사유(回歸思惟)’와 ‘반야(般若)’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 철학은 ‘회귀사유(回歸思惟)’와 ‘반야(般若)’이다. 선생은 예술이란 단지 보고 느끼거나 손으로 쓰고 그리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내재된 정신과 사상, 철학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획과 선으로 드러내는 일이라 역설한다. 특히 철학적 명제인 ‘회귀사유’는 선생이 긴 시간 고심하여 조합해낸 단어로, 모든 만물과 존재가 궁극적으로 그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또한, ‘깨달음을 통해 드러나는 근원적 지혜’를 뜻하는 ‘반야’는 인간이 어떻게 태어나 어떤 삶의 궤적을 거쳐 어디로 귀결되는지에 대한 통찰을 담은 주제이다. 이번 전시에서 60호 크기의 대작을 포함한 12점의 캔버스 시리즈로 장엄하게 구현되었다. 선생은 특정 작품을 대표작으로 꼽기보다, 모든 사유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208점 전체가 소홀함 없는 대표작이라고 자부할 정도이다.
서예가의 필획(筆劃)이 이끄는 진정한 ‘문자 추상’
송은 선생의 문자 추상이 현대 화단의 일반적인 추상 작업과 궤를 달리하는 이유는 그 뿌리가 온전히 ‘서예의 필획’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문자의 근원과 필선의 조형성을 모른 채 형상만을 차용하여 문자 추상을 표방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문자 추상의 진정한 근원은 서예에 있으며, 당연히 서예가가 문자 추상의 정립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선생의 확고한 신념이다.
이를 증명하듯 『조양자감(朝陽字鑑)』 등 고문헌, 갑골문자와 고대 문자를 치열하게 파고들어 풍부한 조형적 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자신만의 선과 획으로 승화시켰다. 서예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기운생동(氣韻生動)하는 현대적 추상으로 나아간 필획은 인위적 작위를 벗어난 원초적 에너지를 발산한다. 심지어 이번 전시에 출품된 <법정 스님 초상화>조차 일반적인 회화 방식이 아닌, 오직 세필의 획과 선의 중첩만으로 형상 묘사를 완성해냈다.
심우식, 外寬內明, 135x35cm
조형과 획으로 빚어낸 철학의 형상화
선생은 문자 추상과 문인화의 진정한 가치가 ‘미(美)와 의(意)’의 구성, 즉 조형미와 철학적 내함에 있다고 강조한다. 송은 선생은 확고한 미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획을 늘리고, 줄이고, 가르고 합치며 균형과 조화를 구축한다. 매일 붓을 들어 수행하듯 필획을 연습하며 작품을 탄생시킨다. 몇 작품만 예로 들어본다.
이번 호 표지 작품은 ‘늙을 노(老)’를 형상화한 <老人은 위대하고 아름답다>이다. 등이 굽은 노인이 꽃나무를 가꾸는 정지용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굽은 등에 태산을 짊어지고 평생을 견뎌온 인간 삶의 숭고함을 갑골문자의 형상으로 응축해냈다.
‘갈 지(之)’는 고대 으뜸 문자를 차용하여, 마치 우주인이 미지의 공간을 유영하듯 걸어가는 신비로운 율동감을 선사한다.
작품 <무제>의 ‘사랑 애(愛)’는 붉은 바탕에 한글 ‘사랑’과 한문 ‘愛’를 회화적으로 겹쳐내어 조화로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영(靈)>은 인간의 뇌와 마음의 복잡한 작용을 형상화한 깊이 있는 추상 작업이다.
선생은 관람자 스스로가 내면의 의미를 탐구하고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추상 작품의 일부 제목을 의도적으로 ‘무제(無題)’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심우식, 枯死木, 70×70cm
심우식, 균형과 조화, 68×70cm (판화)
존재를 바라보다: 시대를 초월한 묵적의 울림
ChatGPT나 Gemini 같은 AI는 송은 선생의 예술을 두고 “전통 서예와 문자 해체를 넘어, 문자가 생겨나기 이전 ‘존재의 흔적’을 쓰는 행위”라고 심층 분석하였다. AI가 전 세계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서도 송은 선생은 “예술은 개인의 정신과 사상, 철학이 결합하여 선과 획으로 빚어지는 것”이라는 예술 철학으로 서화 예술이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작들을 담은 서화집엔 『존재를 바라보다』는 제목을 달았다. “나는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왔다. 그 고민들이 여기에 모여있다.”라고 밝힌 선생은 “정신(精神)은 형상이 없고, 사상(思想)은 손에 잡히지 않으며, 철학(哲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은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을 획(劃)과 선(線)으로, 색(色)과 공간으로 이 세상을 드러낸다.”고 하였다. 선생은 그중에 미(美)를 우선으로 꼽았다. 미의 가치에 따라 예술 측도를 가늠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조형미는 균형과 조화에 있으며, 균형과 조화가 깨지면 미(美)는 깨지고 만다고 하였다. 송은 선생은 “예술성은 첫째로 신비스러워야 하며, 둘째로 위대성(偉大性)이 있어야 하며, 셋째로 자연(自然)스러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세 가지를 갖춤으로써 신운(神韻)이 살아나며 영원히 살아있는 작품이 된다.
심우식, 般若, 46×70cm
장녀의 작품과 함께한 회귀사유(回歸思惟)의 현장
붓끝으로 우주의 근원과 마주한 송은 심우식 선생의 경이로운 ‘회귀’의 현장은 장녀 심윤주 작가의 작품이 함께 하여 의미를 더해준다. 심윤주 작가는 전통 민화의 따뜻한 색감과 상징을 바탕으로 창작 민화와 도자 조형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민화가 지닌 발목과 행운의 메시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동화적 상상력을 더한 조형적 실험을 통해 입체적 민화를 탄생시켰다. 확대되고 변형된 상징 소재들은 그림과 도자가 하나로 융합되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낸다. 도자를 회화적 요소와 결합함으로써 순수미술적 언어로 전환하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으며, 길상적 감성을 물리적 존재로 확장하여 시각이미지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만나는 오브제로 존재하게 한다.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를 졸업한 뒤 뉴욕, 파리 등에서 해외 기획전과 국제 교류전을 꾸준히 참여하고 있으며,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가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송은 심우식 (松隱 沈禹植)
세월을 벗삼아 살아온 인생
사단법인 한국서예협회 고문
서적 발간
『묵적(墨蹟)』(2019)
『문자조형본서집(文字造形本書輯)』(2021)
『난향집(蘭香輯)』(2022)
『한국의 회서(韓國의 繪書)』(2023)
『문인화(文人畵)』(2024)
『글씨에서 추상으로』(2025)
『은노인(송은 심우식) 서화집』(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