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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2-20 11:59:41
  • 수정 2021-02-20 12: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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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희지 선생은 서기 353년 당시 33세로 사안(謝安)을 비롯한 41人을 회계산 난정(蘭亭)에 초대하여 곡수(曲水)의 곁에 열좌(列座)하여 上流로 부터 술잔을 띄워내려 自己앞에 당도(當到)할 동안 시(詩)를 짓는데 詩를 짓지 못한 사람에게는 벌주(罰酒)가 있었다.
이 아회(雅會)에서 지은 詩集에 서문을 왕희지가 쓰게 되었는데 이 서문이 난정서이다. 굵직 굵직하면서도 섬세하게 이어지는 획, 좌실 우허의 독특한 필법, 독립된 점획의 강인함을 느끼면서 매료되어 필자가 30여년간 서예를 지도해온 대한민국 사적 530호 심곡서원에서 행서의 교본으로 삼아 지도하고 있다.
난정서는 行書의 神作이라하여 왕희지(王羲之) 묵적(墨蹟) 中에서도 著名한 것의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筆者는 희지가팔(羲之可八) 78세에 記念 휘호(揮毫)한 임본(臨本) 난정서를 출간(出刊)하여 미래 學書者에게 다소 도움이 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월하 조 성 달







월하 조성달/ 임본 50, 이화문화출판사, 정가 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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