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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대문화우공 한원비림 창건인 이공도 선생 3주기를 맞아 (中國 當代文化愚公 翰園碑林 創建人 李公濤 先生 3周忌를 맞아) - 동방문화예술보고 <한원비림(翰園碑林)> 창건 - 김영삼 前 대통령 초청, 이공도 선생 특별서화전 한국 개최 - 한국비림원 후원과 지속적인 한중 교류 유언으로 남겨
  • 기사등록 2019-10-25 11:20:19
  • 수정 2019-10-25 11: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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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 當代文化愚公 翰園碑林 創建人 李公濤 先生


글 : 허 유  (사)한국비림원 이사장



중국 당대문화우공(當代文化愚公) 한원비림 창건인(翰園碑林創建人) 이공도(李公壽) 선생의 3주기가 다가온다. 2016년 8월 17일 오전 11시20분, 향년 90세로 별세하신 지 3년이 된 것이다.


지난 2016년 6월 2일에 병 문안차 중국 하남성 개봉(開封)의 병실을 찾았을 때 의식이 거의 없어 이효평(李孝平) 아우가 “한국 허유 형이 왔다”고 하니까 겨우 눈을 뜨고 눈시울에 눈물을 보이신 지 2개월만에 운명을 달리하여 영생불멸의 길로 가신 지가 벌써 3년이다.


이공도 선생이 이룩한 업적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높은 성취와 명성과 모범의 대표적인 인물과 가정으로 기려지고 있다. 또한 한국 문화계와의 발전적 교류, 후원은 한중 수교 이전부터 시작된 선생과의 인연이 작고 이후에도 그 자재들에게도 이어져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필자를 늘 따뜻하게 품어주고, 성원을 보내준 선생의 마음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또한 한국비림원, 한국 서예에 보인 지대한 관심과 지속적인 성원을 보내셨고, 한국의 유명인 초청을 통한 적극적인 교류 등은 길이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이공도 선생의 서세 3주기를 맞아 선생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선생의 업적을 간략하나마 기술하여 필자와 한국 서예에 보인 성품과 문화예술 정신을 기리고자 한다.


▲ 中國 翰園碑林


동방문화예술보고 <한원비림(翰園碑林)> 창건


이공도(李公濤) 선생은 1927년 4월 5일생으로, 중국 하남성 공의시 회곽진 서촌리에서 출생하였다. 1951년 3월 공무원으로 출발하여 공직사회에서 오랫동안 봉직하였다. 1953년 8월 공산당 가입, 1957년 문화대혁명으로 우파로 피소, 1958년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다가 1983년 6월 개봉지구농촌음식복무공사로 복직하였고, 1958년 6월 신체가 불편하여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은퇴 후 개봉에 시서화의 뿌리를 내렸다. 특히 선생의 최고 업적은 숱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1985년, 칠조고도(七朝古都)인 하남성 개봉시에 전재산을 출자하여 한원비림(翰園碑林)을 창건한 것이다. 25년간 한원비림에 4천여 점의 비석이 새겨졌고, 자연경관과 인문경관을 융합하는 대형문화예술보고가 세워진 것이다.


선생의 뜻도 높았지만 형제와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동행, 각계 각층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선생의 훌륭한 인품과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정신으로 전력투구하였기에 이룰 수 있었던 크나큰 공적이다.


비림(碑林)은 금석문을 통하여 선조들의 문화 유산을 시공을 초월하여 만나게 해준다. 따라서 비림의 서화작품들은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중요한 순간을 제시하는 것이다.


▲ 李公濤 作, 無愧


선생은 중국 서안비림과 같은 현대비림의 창건을 열망하고, 그 비림이 지향해야 할 형태와 구조를 제시하여 모범을 보였다. 즉 기존의 비석을 세운 형태에서 비문을 석판에 새겨 벽에 부착한 개념을 제시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중국 하남성 공의시(巩義市)에서 나는 돌은 비문을 새기기에 적합하였다. 이는 선생이 한림비림을 창건하는 데 더없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던 것이다.


이공도 선생은 한원비림 창건으로 4,000여 점의 금석문을 제작, 중국서법명원으로 선정되는 등 동방문화예술보고를 창건한 것이다. 중국한원비림 종신 주임, 한국비림 명예총재, 세계비림 명예총재, 세계서법가협회 고문, 중국인민예술가협회 위원, 중국예술가연맹 고문 등 50여 단체 사회 직무로 활동하였다.


▲ 李公濤 作, 鷹擊長空


또한 국가급 서법가 미술가였으며, 1995년 하남성 10대 신문 인물로 선정되었다. 중국 정부로부터 ‘당대문화우공’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전국 노동모범인, 중국 모범가정 10인 가정에 선정되어 크게 화제가 되었다.


중국 중앙정부의 등소평(鄧小平) 주석, 호금도(胡錦濤) 주석, 강택민(江澤民) 주석, 이붕(李鵬) 총리 등 많은 지도자들이 한원비림을 방문하였으며, 일본의 해부준수(海夫俊秀) 총리 등 많은 해외 지도자들도 한원비림을 방문하여 교류하였다.


특히 한국의 김영삼 전 대통령,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한원비림 방문은 하남성 언론 전체가 놀라워할 정도로 큰 화제가 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숭성 전 총리의 방문은 이후 이공도 선생의 한국 초대전으로 이어졌으며, 나아가 한중 우호증진과 문화예술적 번영을 위한 교류와 노력의 중대한 교량이 되었다.


▲ 김영삼 前 대통령 초청, 이공도 선생 특별서화전 개막식


김영삼 前 대통령 초청, 이공도 선생 특별서화전 한국 개최


김영삼 대한민국 전 대통령 초청으로 이공도 선생의 특별서화전이 한국비림박물관과 중국 한원비림원이 공동 주최, 주관으로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린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었다.


사실 이 전시는 오래 전부터 예비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원비림(翰園碑林)을 창건한 이공도 선생의 사적을 접하고 큰 감동을 받은 필자는 한국비림원을 설립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필자와 이공도 선생과의 인연은 한원비림과 한국비림박물관 자매결연을 맺었고, 1998년 5월, 서울에서 세계미술대전을 개최하였다. 이 행사에 한원비림 창설인 이공도 선생을 초청하기도 했다.


특히 2000년 5월, 필자는 김영삼 대통령의 방문사항을 의논코자 이공도 선생을 만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원비림을 위해 쓴 「東方文化藝術寶庫」, 「松柏長靑」, 「良心」 등 3폭의 족자를 전달했다. 이공도 선생은 크게 기뻐하며 그 휘호를 전부 비석에 새겼다. 2000년 6월 16일, 김영삼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18명의 일행이 한원비림을 방문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비림을 참관하면서 한원비림은 과연 “천하제일”이고 이공도 선생은 “손색없는 세계문화명인”이라고 평가했다. 이공도 선생은 「무괴(無愧)」라는 쓴 족자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또 「매향(梅香)」이라는 족자를 손명순 여사에게 증정했다. 김 대통령은 즉석에서 「호연정기(浩然正氣)」, 「중국모범가정(中國模範家庭)」이라는 두 폭의 글을 써서 이공도 선생에게 답례하기도 했다.


2004년 11월에는 이공도 선생이 2000년에 받은 휘호 선물의 답례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흉상을 기증, 2005년 4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거제 생가에 기증하여 흉상 제막식을 가졌다. 또 한편 2006년 4월, 필자는 한국비림원에 이공도 선생의 흉상을 제막하였다.


그렇게 이어져온 이공도 선생과 한국 문화예술계의 교류는 마침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2011년 9월 28일부터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이공도 선생의 특별서화전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초대전에 이공도 선생은 활달한 행초와 고졸한 예서 작품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묵죽 작품들을 선보였다. 높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박진감 넘치는 필치로 서폭과 화폭을 장악하는 힘은 그의 명성이 결코 허명이 아님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 김영삼 前 대통령 중국한원비림 초청 방문


▲ 이수성 前 총리 중국한원비림 초청 방문 (맨왼쪽이 필자)


한국비림원 후원과 지속적인 한중 교류 유언으로 남겨


이공도 선생과의 만남은 큰 감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필자가 충북 보은군 수한면 동정리옛 동정초등학교 자리에 2002년 5월 11일, 한국비림원·한국비림박물관을 개관하게 했다. 역사 인물들의 사상과 업적을 비석에 각인(刻印)해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는 비림박물관은 역사, 문화, 종교, 회화, 조각, 서예 등 시대별 문화상을 엿볼 수 있도록 1,000여 점의 비(碑)를 전시하고 있다. 신라시대 김생 글씨로부터 신숭겸, 김부식, 최치원, 강감찬, 효종, 한석봉, 안평대군, 이항복, 김정희, 이순신, 손병희, 현대 국전작가 등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명 문필가와 유명인사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공도 선생은 국내외 저명인사들과 교류하면서 국제문화교류에 큰 공헌을 하였다. 특히 필자를 도와 금석문화를 마련하는 데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셨다. 특히 필자를 자식으로 삼아 큰아들로 여겼다.


임종을 앞두고는 효천(孝泉), 효평(孝平), 효걸(孝杰) 삼형제에게 “허유는 너희들의 큰형이니 항상 존경하고, 한국비림원을 중국 한원비림에 버금가도록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후원하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이다. 선생의 아들 삼형제 역시 선생과 마찬가지로 계속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계속적인 유대를 형성해오고 있다.


▲ 李公濤 作, 晨露


이공도 선생의 서세 3주기를 앞두고, 필자는 중국 한원비림 초청으로, 한원비림 이효평 대표와 곽연원 주임의 영접과 안내로 이공도 선생 동상에 헌화하고, 만세산을 관람하였다. 이 자리에서 청소년 서화 전시회에 대하여 의논하고, 10월 한중서화대전 개최를 합의하였다.


의(義)와 신(信)을 중히 여긴 이공도 선생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사사롭게 쓰지 말고 청렴결백하고 근면 성실하게 살면서 모든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라”는 가훈을 한원비림 정문에 세우기도 했다.


이공도 선생이 세운 업적과 한중 문화예술 교류는 한마디로 ‘동방문화예술의 정수로서의 한중문화교류’ 정신이다. 선생의 정신과 실천은 면면히 이어져온 역사적인 한국과 중국의 문화와 예술교류 위에 각 분야의 교류를 집대성하여, 미래에는 동방문화예술이 전 세계의 정신적 지주로 발전하는 오리엔탈 문화의 창달을 목표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 李公濤 作, 滿江紅 宋 岳飛詞


▲ 李公濤 作, 咬定靑山


▲ 李公濤 作, 咬定靑山


▲ 李公濤 作, 高瞻遠矚


▲ 李公濤 作, 滿江紅 宋 岳飛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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