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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6-14 14:40:00
  • 수정 2019-06-14 15: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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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효자묘지명은 隋나라 仁壽 3년(603년)에 쓰여진 것으로 종횡이 고루 約 83cm에 37行이며, 各行이 37자로 되어 있다.
청나라 光緖(광서) 13년(1887년)에 陜西省(섬서성) 蒲城縣(포성현)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는 섬서성 포성현 문화관에 보관되어 있다.


소효자묘지명은 필획이 준엄하고 결체는 엄정하여 학자들로부터 歐陽詢(구양순)虞世南(우세남)先聲으로 칭송받아 왔다.

1980년대를 전후로 한국 서단에도 당해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북비의 고전 則 北魏(북위)諸碑造像記, 墓誌銘 등과 같은 많은 자료들을 임습하는 인구가 주류를 이루다 보니 현재는 안진경이나 구양순, 저수량 등과 같은 당대 해서의 거봉들이 설 자리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북조, 남조, 북위해와 당해 등은 모두가 수레바퀴의 두 축과 같은 것이어서 서학도 들에게는 반드시 배우고 익혀야 할 공동과제라고 볼 때 북비의 강건한 필획과 소탈한 결구, 그리고 당해의 치밀한 결구와 방원을 겸비한 여유로운 선질, 이 두가지를 함께 익히고자 한다면 아마도 소효자묘비명이 그 경계선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하여 위로는 魏晋의 서법의 맥을 찾고, 아래로는 初唐에서 晩唐으로 이어지는 해서의 완성기, 곧 정형화, 정제화된 해서의 극점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김재봉편저, 국배판 208, 이화문화출판사, 정가 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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